개발자도 〈쇼미더머니〉의 신성 우원재에게 배워보자

때마침 좋은 글을 만났다. 하지만, 지난 달 잠시 서울에 들렀을 때 <쇼미더머니6>를 보지 않았다면 읽지 않을 기사였다. 준결승 정도에 해당하는 2편 정도를 봤는데 정말 독특하다고 기억했던 오디션 참가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힙합의 장르적 로컬라이징과 우원재

할렘가 산물을 한국의 평생 입시제도로 해석하는 우원재

기사 내용은 한국 힙합문화에 대한 상당한 배경지식을 요하는 글인데다가, 분량으로도 스압[1]이 심해서 다 읽을 수조차 없었다. ‘아 맞아’ 하고 공감을 얻은 뒤에 다 읽지 않고, 공감에 대한 글쓰기를 위해 참을성을 갖고 나에게 글을 쓰도록 자극한 부분만 추려봤다.

우원재는 정신과에 다니고 비니를 눌러 쓴 채 음울하게 삼백안을 뜨는 ‘힙합 오타쿠’다. 미국 힙합에 없는 한국화된 캐릭터다. 그가 ‘시차’에서 미국 힙합의 관습 ‘허슬’을 재현하는 모습을 보라. 우원재가 작사에 접근하는 방향이 다른 래퍼들과 어떻게 다른지, 대중이 왜 우원재의 가사에 새롭다며 호감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허슬’의 용례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돈벌이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힙합이란 음악이 할렘가를 벗어나는 동아줄이며, 개인의 수완 외에 가난을 극복할 방도가 없는 미국 흑인들의 현실이 낳은 관습이다. 때문에 허슬은 마약 판매 같은 불법적 행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일단,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현재 한국 힙합문화가 미국 힙합의 관습을 그저 반복하는 듯한 양상을 벌이고 있다고 문화평론가 윤광은은 말한다. 이를 전제[2]로 했을 때, 우원재는 힙합의 한국 로컬라이징에 성공했다는 해석이다. 허슬이라는 관습을 차용했지만, 우리 맥락에 맞게 해석해냈다고 한다. 그게 무언가?

우원재 ‘시차’는 작업에 몰두한다는 허슬의 요점만 취하고 가사의 배경과 내용을 자신의 현실에 맞게 조율한다. 그는 온몸에 문신을 새기고 거리를 활보하는 게토의 마약상이 아니라, 교수님의 꾸중 때문에 문신을 감추고 강의실에 가는 힙합동아리 대학생이다. 밤을 새워 모니터 앞에서 랩 하고 뜬 눈으로 다시 강의실에 가는 게 그의 일과다. 그가 허슬을 통해 저항하는 것은 게토의 가난과 경찰이 아니라 모든 이의 일과를 한 가지 패턴의 초침에 맞추는 한국의 평생 입시제도다. “일찍 일어나야 성공한다”는 사회에서, 밤과 낮을 바꾸며 자신 만의 꿈을 뜬 눈으로 꾸고 있다. 이건 홍대 힙합 동아리라는 우원재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지만 보편적 공감대가 강력하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라면 무언가를 떠안으며 혹은 무언가로 탈출하며 낮과 밤의 시차를 바꾼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제 수행이건 시험공부이건 공모전 준비이건 편의점 알바이건 취미 활동이건 간에 말이다. 이곳은 불면의 상태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는 에너지 드링크의 과용이 이슈가 되는 사회 아닌가.

구체적으로 로컬라이징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온몸이 문신인 게토의 마약상 대신 교수님 꾸중 때문에 문신을 감추고 강의실에 가는 힙합 동아리 학생
  • 게토의 가난과 경찰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일찍 일어나야 성공한다”는 한 가지 패턴에 맞춘 사회

조금 더 읽어보자.

“난 쟤들이 돈 주고 가는 파리의 시간을 사는 중이라 전해”라는 가사는 듣는 이들의 고되고 하찮은 일상을 낭만적 여행지로 초대하고 그들의 어깨를 두들겨 준다. ‘시차’는 근래 상업 차트에 오른 힙합 트랙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독창적이며 떳떳한 가사적 성취를 이뤘다. 한국 래퍼들은 이 신참 래퍼에게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워야 한다.

힙합 문화만의 문제인가?

내가 쓰는 글을 래퍼가 읽는다. 또한, 우원재에게 래퍼가 아닌 사람들도 배울 수 있다. 지난 시리즈에 다룬 바대로 우리는 바람직한 것을 모방할 수 있다. 그러자는 것이다.

대기업과 일해보면[3] BP(Best Practices)로 인정받는 무언가에 기초한 보고에 열을 올린다. 달리 말하면, 선진기업이나 일등기업에 대한 묻지마식 따라하기 현상이 꽤 오랫동안 관찰되고 있다. 전통기업의 IT도입으로 범위를 좁혀서 보면 더 두드러진다. 최근에도 꾸준히 올라오는 기사 제목을 보라.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빅데이터 플랫폼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회사도 AI 적용을 해야 하지 않냐고 불안해하는 경영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만일 이런 현상이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그 현상과 진부한 힙합의 따라하기 지적이 닮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원재의 로컬라이징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로컬라이징

최근 우리 기업의 사드 피해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오래 일하신 한국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과장이 심하다는 것이다.[4] 사드 피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한국 회사가 고전하는 진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중국 기업의 성장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거나 중국에 매력적인 기여를 하지 못해 중국 당국[5]이나 여론과 불편한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일한 시간이 1년이 넘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회사를 겪으면서 중국 현지화 즉 로컬라이징이 갖는 막중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 중국에 진출한 한국 회사의 중국 법인은 한국 회사인가? 중국 회사인가?
  • 회사의 리더는 한국 사람이 적합한가? 중국 사람이 적합한가?
  • 회의할 때 주로 쓰는 언어는 무엇이 적합한가?

한국 회사가 중국에 진출해서 얻으려는 바는 무엇인가? 단지 돈 버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이 없다면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단히 명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회사 구성원의 판단은 자칫 기회주의자와 같이 보신만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자기 철학의 필요성

최근에 지인에게 철학에 대해 조언한 바 있다. 철학이라는 표현은 조금 거창하고, 다년간 하게 되는 일이라면 그 일을 하는 이유를 확고하게 생각해보라고 한 것이다. 상황이 녹록치 않고 힘들어지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한, 이해관계자가 많고 일이 복잡해지면 갈등을 해소하면 절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거에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허둥지둥 일에 끌려 다닌 일이 있다. 지나고 돌아보니 일을 하는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 점차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경험이 있어서 지인에게 조언을 하게 된다.

어렵고 긴 일이 아니라 프로그래밍 일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 리팩토링을 하지 않으면, 프로그램 수정이 어려워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일정에라도 쫓기게 되면, 프로그래밍에 대한 즐거움은 모두 사라지고 대강 해치우자는 마음이 생기거나, 지긋지긋해져서 다시는 그 코드를 보기 싫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마음 상태로 좋은 코드를 짤 수도 없거나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복원하지 않으면 좋은 소프트웨어가 될 수가 없다. 그러려면, 개발자는 그 코드를 어떤 방향으로 혹은 어떤 대강의 얼개로 만들고 유지할지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이 필요하다. 더러는 뜻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도 의지를 내서 자기 뜻대로 관철하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가치관은 필수다. 물론, 소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읽은 훌륭한 글을 인용하면 마친다.

우리가 훌륭한 사상을 갖기가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그 사상 자체가 무슨 난해한 내용이나 복잡한 체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상이란 그것의 내용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 실현된 것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

처음처럼(신영복) 203쪽에서

주석

[1] ‘스크롤 압박’의 줄임말

[2] 힙합 문화 자체에 대한 글은 아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그의 말을 믿기로 하자.

[3] 필자는 15년 이상 대기업에 준하는 기업을 상대로 일하고 있다.

[4] 네이버 차이나 정도의 양질의 컨텐츠가 아니라면 일간지/경제지 정도가 중국을 다루는 기사는 현실감이 떨어진다. 작은 사실에 기초해서 황당한 허구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5] 왜 중국 시장은 그리 위험한가란 글을 보면, (그의 가치관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중국 사회가 우리나라와 같은 법치가 아니란 점을 지적한 것을 옳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야 공정거래위원회가 비로소 제기능을 할 정도로 한동안 대기업과 재벌의 횡포가 말할 수 없었다. 중국은 사회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에 반사회적 기업 활동을 하면 정부의 제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