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기업이 아닌 회사는 왜 IT를 활용하지 못하는가?

왜 시중은행은 카카오뱅크처럼 못하는가? 에 이은 두 번째 연재이다. 그러나, 기획에 의한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던 답답함이 계속 쓰도록 자극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직업의식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오지랖이다.

연속성을 갖고 보기 위해 앞선 글을 다시 읽어 보자.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솔루션 도입 자체로 효과가 나길 바라는 태도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지난 주에도 지인이 그러는 모습을 목격했으니까) 나는 이를  솔루션 우선 無전략이라 부르며 비판한 바 있다. 지인은 유통업계에 혹한 사람이고, 앞선 글은 은행의 행태를 말하고 있다. 이들 업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태생이 인터넷 기업이 아닌 많은 업종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자신들의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풀려는 시도는 과거부터 계속되어 왔다. 다만, 그간 누적된 IT의 발전이 無전략 솔루션의 효과를 0으로 수렴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버드 대학 교수님들이 말합니다

이번에 다시 글을 쓰게 만든 동기는 HBR[1] 12월호다. 과거 성공적이었던 전략에 중독된 경영자를 지적하는 글이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퇴행적 경영행위에 대해 몰입의 상승escalation of commitment이란 우아한(?) 말을 붙였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도 전형적인 몰입의 상승 사례로 보였다. 그에 대한 생각을 풀어 놓고 싶었다.

인터넷 기업이 아닌 이상 CIO를 포함해 대부분의 대한민국 경영진은 IT 혹은 소프트웨어 응용에 대해 무지하다. 기성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공학에 정통한 사람이 경영자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후발 국가인 역사를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의 CIO 역시 다른 경영진보다 나은 점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현시점에  IT 운영을 비용 절감으로 보는 경영자는 스스로 무지를 증명한 것이다. 과거 진짜 아키텍트가 없는 EA 시장 잠재력을 알리는 글에서 주장한 내용 일부를 인용한다.

시간은 자연히 진화와 도태를 부른다. 그래서, EA가 없었어도 그런대로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은 앞으로 나아갔다. 굳이 폐해를 찾자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CIO 자리를 EA가 맡으면 좋은데 후보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게) ‘운영 비용 절감‘ 따위를 말하는 시대착오적인 엘리트 사업관리자가 CIO 되는 안티패턴을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내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EA 혹은 아키텍트가 되고픈 분들은 저와 소통을 하자고 이 글을 살려낸다.

한국 사회의 기성 기업(혹은 굴뚝 기업)의 디지털 부적응은 과거 대한민국 고도 성장기에 기반을 다졌던 탄탄한 회사들이 과거의 성공에 발목을 잡힌 몰입 상승의 대표적 현상이다. 놀랍도록 짧은 시간에 성장했고, 더러는 글로벌 선두를 넘나들어 자랑스러워 해야 할 우리 기업들이 최근에는 꽤 오랜 시간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소프트웨어 업계에 몸담은 만큼 경영자의 집단 퇴행[2]의 대표적 현상을 IT를 비용으로 보는 관점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필자의 주장을 더 이어가기 전에 다시, HBR 글로 몰입의 상승에 대해 조금 더 배워보자.

흔히 범하는 어리석음

HBR은 이를 여섯 가지로 요약한다. 긴 글을 여기에 옮길 수는 없고 한줄 요약만 남긴다.

  •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 … 흔히 말하는 본전 생각
  • 손실 회피loss aversion  … 벌지 못해도 좋으니 잃지는 말자 주의
  •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 … 치밀한 계획을 세우면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속에 사는 경영자
  • 업무 완수에 대한 선호preferences for completion … 당장 보이는 일 위주로 업무 완수를 하려는 경향
  •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 자기 시각으로 모든 것을 보는 무지
  • 개인의 정체성personal identification … 회사에서 내 역할과 자기 개인성을 일치시키는 사람

독자들은 위 내용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떠올릴까? 꽤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HBR 기사는 몰입의 상승을 설명한 이후에 최고위 경영회의 혹은 이사회에서 새로운 전략을 키워갈 수 있는 방안을 설명한다. 그건 HBR의 역할로 맡기고, 필자는 위 항목을 보면서 애자일Agile이란 단어 혹은 개념을 떠올렸다.

경영자에게 위 항목을 이겨내고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방식이 바로 애자일이다. 많은 이들이 애자일은 방법론으로 규정하곤 하는데, 애자일은 정해진 프로세스나 공정 준수만으로 정확하게 무언가 획득하는 것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다. 도리어 불확정성을 전제로 하여 진화하는 혹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방법을 말한다.

디지털 적응과 애자일 (쓰고 보니 결론)

애자일은 방법론이기 보다는 실패와 도전을 수용할 수 있도록 보다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IT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남들 하는대로 비용 절감으로 다루는 손실 회피를 벗어나는 일이다. 솔직하게 우리 회사가 IT 혹은 디지털 세상의 경영 능력이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다원적 무지를 벗어나도 개인의 정체성에 타격을 주지 않는 안전한 기업 문화를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다.

불가피한 실패와 학습 비용을 수용하고 (새로운 환경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만드는 계획과 시도에 대해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하여 매몰비용 오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데에 집중하여 퇴행이 아닌 전진에 집중하게 하는 방식이다. 업무완수에 대한 선호로 퇴행하지 않고 진화하여 끝끝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게 하려는 노력이다.

https://www.columnit.com/tips-for-overcoming-digital-transformation-challenge.html

https://www.columnit.com/tips-for-overcoming-digital-transformation-challenge.html

재미 삼아 해보는 개발자에 대입하기

다음 내용은 팝잇 주요 독자들이 경영자가 아닌 개발자란 점에서 쓴 부록이다. 과거의 성공에 취하는 몰입의 상승을 개발자 버전으로 예를 들어봤다.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

흔히 말하는 본전 생각. 상당수의 개발자들에게서 관찰할 수 있다. 자기가 가장 익숙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버리지 못한다. 좋아하는 언어나 기술에 대한 애정이 지나친 경우가 있다. 전혀 맞지 않는 상황에도 해당 기술을 택하며, 늘 자신이 익숙한 기술의 장점만 말하곤 한다. 10년전쯤 유행했던 다언어 프로그래머Polyglot Programmer란 운동은 언어를 도구로 바라보며, 상황에 맞게 쓸 수 있도록 유연하고 부지런해지자는 운동에 가깝다.[3]

손실 회피loss aversion

벌지 못해도 좋으니 잃지는 말자 주의가 있다. 개발자 중에도 있는데, 외주 개발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들이 자주 보여주는 모습이다.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

한 번에 완벽하게 짜려던 시절이 있었다. 정말 무지한 시절이었다. 지금 내가 개발자라면, 항상 코드를 수정할 수 있게 준비해두는 편을 택하겠다.

업무 완수에 대한 선호preferences for completion

예전에 한국에서 일할 때, 나름대로 인정받는다는 팀장이 제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그러던 중에 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당신 회사 개발자는 왜 납기를 못지키냐는 것이다. 웃음밖에 안났다. 자기들이 몸에 배어서 안하는 일까지 모두 정리하느라 얼마가 걸릴지 몰라서 그런건데… 그 팀장은 내용 자체보다는 언제까지 다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개발자들도 ‘해치우고 자랑하고‘ 집에 가는 친구들이 있다. 이들에게 리팩토링refactoring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자기 생각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개인의 정체성personal identification

회사에서 내 역할과 자기 개인성을 일치시키는 사람이 있다. 과한 경우 윗사람(?)이란 이유로 당당하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개발자중에도 자기는 빈틈없이 일했고,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이 자기를 어렵게 한다고 툴툴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주석

[1] Harvard Business Review 한국어판

[2] 몰입의 상승이란 말이 와 닿지 않아 경영자의 집단 퇴행이란 말로 현상 자체를 설명하는 말을 넣었다.

[3] 아주 소수만 그렇게 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고백하면 필자도 개발자 시절(?)에 이런 수준에 오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