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서비스를 바라보며

몇 개월 동안 애정을 가지고 개발한 서비스가 있었다.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인수인계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만든 서비스를 버리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를 차용하여 별도 서비스로 만들었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모놀리스로 합치려 하고 있었고, 태블릿 기기에서 사용하도록 만들었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PC 데스크톱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의도한 설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개발자인 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은 내게 아래와 같이 가르침을 준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을 작성했는데도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자신에 대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했던가.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들었지만 그것은 버려질 수 있다. 실망할 필요 없다. 상황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내가 자신에 대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지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버리려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일까? 우선 그 사람(들)을 판단하기 앞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허구에 대한 믿음

먼저 책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을 들어보자. 하라리는 국가, 신, 기업, 돈, 이념 등은 모두 허구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가상의 실재’라고 부른다.

가상의 실재란 거짓말 뜻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이란 거기 사자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강가에 사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중략) 거짓말과 달리 가상의 실재는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공통의 믿음이 지속되는 한, 가상의 실재는 현실 세계에서 힘을 발휘한다. - <사피엔스> 71쪽

인간은 허구를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협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진 제국과 로마 제국에 이르는 모든 협력망은 ‘상상 속의 질서’였다. 이들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규법은 타고난 본능이나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공통의 신화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 <사피엔스> 169쪽

누군가 믿음이란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에 보내는 신뢰라 했다. 그렇다 믿음이란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인간을 행동하게 만든다.

‘상상의 질서’와 애자일 선언문

또한 하라리는 미국 독립선언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이 정확히 내가 ‘상상의 질서’라고 말한 바로 그것이니까.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란 사악한 음모도 무의미한 환상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사피엔스> 177~178쪽

소프트웨어 세상에는 애자일 선언문이라는 것이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할 때 12가지 원칙을 기술한 것이다. 애자일 선언문 역시 ‘상상의 질서’이다. 나는 이를 따르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애자일 선언문에서 말하는 12가지 원칙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https://agilemanifesto.org/iso/en/manifesto.html

https://agilemanifesto.org/iso/en/manifesto.html

그 사람(들)은 믿는 것이 다를 뿐이다

다시 내가 만든 서비스를 버리려는 사람(들)을 얘기를 해보자. 옳다 그르다 역시 허구다. 마이크로서비스가 모놀리스 보다 좋다. 태블릿이 PC 보다 좋다는 모두 내 믿음일 뿐이다. ‘버린다’는 표현은 또 어떤가. ‘자연재해’라는 표현은 지극히 인간적인 표현일 뿐이다. ‘천국’과  ‘지옥’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내 믿음에 근거한 표현일 뿐이다.

나와 믿는 바가 다를 때 비난 본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상대의 약점을 들춰내려는 자신이 보인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자신이 믿는 바를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비난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 그 행동의 결과를 어떻게 책임지는 냐에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지금은 그 사람(들)이 믿는 바를 함께 믿거나 지지해 주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힘의 방향은 언제든지 쉽게 바뀔 수 있다.

함께 자라기

나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 함께 일한다. 협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해가 중요하다. 심리치료사이며 의사소통 전문가인 버지니아 사티어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생각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의미 찾기 활동을 하는 동안,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는가? 어쩌면 같은 말에 대해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좀 더 분명해졌을지도 모른다. 다른 생각을 배우는 과정을 바로 '이해'라고 한다.- <가족힐링>

다른 생각을 배우기 위해서는 존중해야 한다. 존중의 시작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내가 옳다는 생각 보다 다른 사람의 무엇을 믿고 행동하는지를 살펴보자. 하라리의 말처럼 인간은 함께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을 떠올려보자. 독일과 영국은 왜 전쟁을 벌였는가? 영토나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중략) 하지만 양측이 함께 믿을 수 있는 공통의 이야기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전쟁을 벌였다. 오늘날 영국과 독인 간의 평화가 유지되는 이유는 더 많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두 나라 국민 대부분이 믿는 이야기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마음과 그 마음이 만들어내서 믿고 있는 환상이다. - <사피엔스> 1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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