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챗 창시자 장샤오룽의 4시간 강의 기록 : 2. 위챗의 시작

원문 링크 : 2019년 1월 9일 위챗 공개 강의에서 텐센트 위챗사업부 총재 장샤오룽(张小龙)의 4시간 강의 기록

위챗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채팅 앱입니다. 매일 10억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이 앱은 채팅 앱이면서 동시에 채팅 앱이 아닙니다. 위챗은 스스로를 10억 사용자의 생활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위챗이 단순 채팅 앱에 그치지 않고 10억 인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현재의 위챗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미래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위챗의 아버지라 불리는 위챗의 창시자 장샤오룽의 4시간 강의를 통해 그 비결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글은 장샤오룽의 4시간 강의를 요약, 번역한 글로 총 7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서두. 희망이 가장 소중하다.
1. 좋은 서비스란 무엇인가?
2. 위챗의 시작
3. 위챗의 동력
4. 미니프로그램(小程序, 샤오청쉬)
5. 공식계정(公众号, 공중하오), 모멘트(朋友圈, 펑요우췐), 타임캡슐(视频动态, 스핀동타이)
6. 읽기(阅读, 위에두), AI(인공지능)
7. 위챗페이, 기업위챗(企业微信, 치예웨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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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좋은 서비스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했습니다. 위챗은 왜 이런 이상한 (물론 제가 보기에는  대단히 정상이지만) 서비스에 대한 원칙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들은 적이 있을텐데 당시 저는 Pony(주: 텐센트 마화텅 회장)에게 메일을 한 통 보냈습니다. 메일 내용은 위챗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후에 동료들과 이 때를 회상 하면서 조금은 오싹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만약 그 날 제가 메일을 쓰지 않고 탁구를 치러 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메일 쓰는 것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위챗은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다른 팀에서 위챗과 유사한 어떤 것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위챗 같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위챗을 만들기 전에 웹 시대에 우리 팀은 ‘읽기공간(阅读空间)’ 이라고 불리던 서비스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 때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블로그가 유행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블로그를 구독 할 수 있도록 만든 ‘읽기(阅读)’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트위터가 나온 후에는 방송을 만들었는데 거기에도 문장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쓴 문장을 매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Kik(주: 2010년에 킥 인터렉티브에 의해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기반 무료 메신저)이 출시 될 당시 스마트폰에서 메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할만한 적당한 도구가 없었는데 Kik을 보고 이것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QQ메일(주: 텐센트의 메일서비스, 장샤오룽이 2005년 텐센트에 합류하여 QQ메일을 맡아 3년만에 텐센트 최고의 제품으로 성공시킴)팀에서 10명을 뽑아 개발을 시작했는데 안드로이드 개발에 2명, 아이폰 개발에 2명, 심비안 개발에 2명 그리고 백앤드 개발에 2명, UI설계 1명 그리고 저까지 총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약 2개월을 작업한 후 첫번째 버전이 나왔는데 이것이 위챗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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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챗을 출시하고 나서 우리 모두 매우 불안해 했는데 왜냐하면 반응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시 후에 위챗 사용자는 매우 적었습니다. 반년이 지나서도 사용자가 많이 늘지 않았는데 그 원인 중 하나로 서비스가 사람들이 받아드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 지적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우리가 고수했던 것은 새로운 서비스가 스스로 자연 성장 곡선을 만들어낼 때까지 이벤트나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서비스가 과연 사용자를 끌어들일만한 흡인력이 있는지, 사용자들이 직접 입소문을 낼 것인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 후 위챗 2.0이 출시 된 후에는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벤트를 시작해도 될 시기가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위챗은 친구를 휴대폰 연락처에서 가져올 수 없도록 했는데 이로 인해 운영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였습니다. 우리는 위챗 친구를 QQ에서 선택해서 가져오거나 본인이 직접 위챗 친구를 구성하도록 했습니다.

당시의 두 가지 결정, 휴대폰 연락처에서 대량으로 친구를 등록 하게 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친구를 선택하게 한 것 그리고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성장한 후에 이벤트를 시작한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결정들로 비록 처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성장이 가속화 되었을때 서비스가 건강함을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위챗의 시작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서비스가 이렇게 0부터 시작해서 10억 DAU까지 달성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챗이 어떻게 현재의 이런 서비스가 되었는지 그리고 미래에는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위챗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각도에서 위챗의 8년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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