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개발자 생활기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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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현재 호주 뉴캐슬이란 도시에서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는 제가 경험한 호주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았고 이번 글에서는 제가 경험한 호주의 소프트웨어 개발 문화와 환경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호주 라이프 스타일 글과 마찬가지로 제가 설명하는 호주 개발 문화와 환경은 저의 경험에 바탕을 둔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임을 기억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글과 마찬가지로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일하고 있는 회사를 간단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IT Managed Service Provider Company입니다. MSP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서비스를 대신하여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어떤 회계 회사가 있다고 가정을 하겠습니다. 회계 회사가 사업이 잘돼서 회사는 계속 커져가고 필요시마다 IT 컨설팅 업체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제는 IT Department가 회사에 필요한 시기가 왔습니다. 이런 업체에게 IT Department 관련 업무를 위임받아 운영하는 것이 IT MSP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조금 특이한 타입의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한 회사에 속한 일반 개발자와는 조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특이한 회사에 몸담고 있는 동안 리모트나 이메일로 대화하는 일은 어쩌면 이제는 흔한 케이스라 넘어가더라도 프로젝트 크기 측면에서는 SMB(Small Medium Business)부터 Enterprise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 보았고 비즈니스 도메인도 리테일에서부터 광산업까지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보았습니다. 이런 조금 특이한 경험을 통해 제가 느낀 호주 소프트웨어 개발 문화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1. 경력 중심의 사회

저는 한국에서 개발자로 생활하면서 주변에서 아주 많이 학력 때문에 고민하는 동료 개발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저도 학력 때문에 초보 개발자 되고 나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하고 일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평범한 코스를 지나온 친구들보다는 조금 일찍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되면서 한국에서 학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이 왜 좋은 대학가라고 잔소리를 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개발자의 실력보다는 이력서에 대졸, 초대졸, 대학 중퇴, 고졸이라는 학력이 매겨주는 레벨의 벽은 생각보다 크고 높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개발자 친구 중 한 명은 저보다 어리지만 TAFE (호주 전문대학)을 중퇴하고 23살에 취직해서 9년의 경력을 가진 친구 입니다. 지금 이 친구는 시드니에서 크진 않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회사에서 리드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국을 떠나온지 이제 제법 오랜 시간이 흘러 한국의 개발 환경을 잘은 모르지만 제가 가진 기억으로 볼 때 이 친구가 한국에서 시니어나 테크 리드 포지션을 얻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 됩니다.

하지만 호주는 "경력 중심"의 사회입니다. 이곳에서는 고줄 출신이라는 것이 한국에서 만큼 크게 작용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직여부에 상관없이 링크드인에서 잡 알림 이메일을 받아봅니다. 잡 마켓이 요구하는 스킬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용도로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메일을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받아 봤음에도 불구하고 자격 목록에 대학 졸업자 또는 졸업 예정자라고 못을 박아 두는 케이스는 드물었습니다. 몇 몇 분야의 경우 석박사 학위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해당 도메인의 경력과 경험이 있는 경우 석박사 학위가 없어도 된다고 명시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2. 다양한 Meetup

Meetup_Logo_2015

제가 사는 뉴캐슬에서는 개발 관련 미트업이 없어서 시드니를 종종 내려갑니다. 시드니나 멜버른 같은 경우에는 개발 관련 미트업이 아주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브리즈번 같은 경우는 FP (Functional Programming) 관련 미트업 수준이 꽤 높다고 들었습니다. 시드니 미트업 리스트를 한 번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링크). 시드니에서는 거짓말을 좀 보태면 한 달 내내 meetup에 가서 저녁을 피자와 맥주로 저녁을 해결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시드니 인구수가 서울 인구수의 절반도 안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2~3000명의 멤버를 지닌 미트업을 쉽게 찾아보실 수 있다는 사실과 다양한 개발 관련 미트업이 있다는 것을 보면 시드니 개발자들이 얼마나 열심을 가지고 배우려고 하는지 잘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멤버가 많은 미트업의 경우는 100명이 훌쩍 넘어가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크기를 떠나서 20-30명의 작은 인원이 모이는 미트업이라도 꽤 높은 수준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런 미트업에 가면 오픈소스 프로젝트 개발자/커미터들을 제법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실력을 지닌 개발자의 발표를 통해 배우고 미트업 시작 전후 시간을 통해 모르는 부분을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오픈소스 커미터나 스타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미트업에서 다른 개발자들을 만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LinkedIn또는 seek.com.au의 구직란에 심심치 않게 어떤 미트업에 꾸준히 참석하는 사람을 원한다 또는 플러스 요인이다 같은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을 통해서도 얼마나 미트업이 활성화되어 있는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3. 컨퍼런스 (트레이닝) 지원

YOWConference2016_Sydney_2-02

호주는 7월 1일이 회계연도의 시작이라 얼마전에 텍스리턴을 통해 돌려 받은 돈에 여유돈을 더해 아토피 때문에 몸상태가 엉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금을 들여 NDC(Norwegian Developers Conference) Sydney에 갔습니다. 호주는 회사에 세금 해택을 주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회사에 주어지는 세금 해택 중 하나가 직원 트레이닝에 쓴 금액을 회사 수익에서 공제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큰 사이즈의 회사가 아니더라도 보통 3000 달러를 상회하는 컨퍼런스 (또는 트레이닝) + 숙박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큰 회사 같은 경우는 많게는 1년에 3-4번도 컨퍼런스에 보내주는 회사도 있습니다만 보통은 1년에 한 번쯤은 회사에서 이런 컨퍼런스 비용을 지원해 줍니다. 설사 회사가 지원해 주지 않더라도 직업과 관련 있는 트레이닝의 경우 개인 세금 해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노선으로 회사가 컨퍼런스나 트레이닝을 지원해주지 않는 경우 최소한 트레이닝 기간 동안 개인 휴가를 사용하지않고 컨퍼런스 기간동안 유급 휴가 정도는 얻어낼 수 있습니다.

4. 매니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좌우한다.

제 주변 한국 친구들에게 흔하게 들을 수 있었던 환상 중 하나가 외국이라 수평적인 문화라서 매니저 직급이 개발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한국에 비해 적지 않느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가 이 것만큼은 분명하게 No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만큼 아니면 그 이상 Supervisor, Manager 직급들은 여러분에 일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한국에서 근무했던 회사처럼 관료주의에 최전방을 목표로 하며 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윗분들이 퇴근하지 않았다는 이유 만으로 회사에 앉아 일하는 시늉을 해야 하는 이런 상식을 벗어나는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여러분이 일하는 스타일을 결정할 수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회사에 처음 취직해서 만난 첫번째 매니저는 고객보다는 같이 일하는 저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사소하고 귀찮은 기능 추가를 고객이 요청하는 경우 제가 하기 싫다고 하면 제 의견을 존중해서 고객을 설득하는 타입이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아주 천사 같은 스타일이였기 때문에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천사 같은 매니저가 떠나고 고객 우선을 외치는 매니저가 나타나자 정말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고객사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개발자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는 상관없이 고객만을 위한 결정을 해서 일을 주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스트레스 받고 일이 재미없게 되었습니다.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매니저는 고객-개발자 중립적으로 잘 조율해주는 사람이 좋은 매니저라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천사 같은 매니저는 고객한테 악마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저한테는 악마 같지만 고객에게는 천사일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편적인 예를 하나만 들었습니다만 저는 여러 고객사의 개발자와 같이 일하는 경험을 하면서 같이 일하는 개발자 중에 성격 특이한 사람이 주는 피곤함 보다 매니저가 성격이 특이한 경우 주는 피로감이 더 크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좀 힘들다고 느꼈었던 매니저 타입은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경우, 프로젝트에 정확한 목표가 없이 리드하는 경우,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 아래에 두려고 하는 경우 등이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5. 멍청한 질문은 없다

dumb-questions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착실히 받고 호주에 온 저로서는 문화적 충격을 크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입니다. 브레인 스토밍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가능한 많은 숫자의 아이디어를 끄집어 내놓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아이디어 회의를 몇 번 경험해보았습니다. 시간을 주고 아이디어를 회의에 가지고 오라고 한 다음 회의 시간에 좀 좋은 아이디어가 없다 싶으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회의가 끝나지도 않고 긴 시간 압박을 받았습니다.

호주에서도 주제와 시간을 주고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설사 아이디어가 없이 미팅에 들어간다고 해도 딱히 두렵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딱히 좋은 아이디어가 없으면 따로 시간을 따로 배정하고 어떠한 의견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브레인 스토밍 미팅을 합니다. 그리고 브레인스토밍 미팅 시간에 정말 머리에 떠오르는 데로 바보 같은 의견이든 질문이든 자유롭게 이야기합니다.

브레인스토밍의 또 다른 특징은 판단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아이디어가 좋든 나쁘든 일단 브레인 스토밍 단계에서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이것을 경험했을 때 저는 상당히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정말 제가 볼 때는 한심한 의견과 질문이 오가는걸 보고 있자니 정말 저런 질문과 의견을 말하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바보 같은 의견들이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던가 기존 아이디어를 다른 측면에서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을 몇 번 경험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비판 받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멍청한 질문이나 농담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일단은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 좋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는 농담은 쉽게 하지만 스스로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의견을 끄집어 내놓는 것은 아직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크게 다섯 가지로 제가 개발자로 생활하면서 느꼈던 호주의 소프트웨어 개발 문화와 환경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큰 틀에서만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에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만 디테일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제 경험을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호주는 한국에 비해 경력 중심의 사회라고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온오프믹스/스터디 그룹이 있겠지만 호주도 개발자 관련 미트업이 많이 있고 이러한 미트업 참석이 커리어 관리에 줄 수 있는 요소가 많고  크게 느껴졌습니다. 호주에서는 한국처럼 무료 컨퍼런스는 찾기 힘들지만 보통 회사 지원이 많고 설사 회사 지원이 없다고 하더라도 세금해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금 쉽게 투자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수평적인 문화라고 해도 매니저는 개발자 일에 많은 영향이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열린 사고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짧지만 이렇게 두 편으로 저의 호주 시골(?) 개발자 생활기는 끝이 났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느끼고 배우는 것들을 popit.kr에서 더 자주 나눠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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