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아키텍처 번역을 마치며...

"이 글은 책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과도한 책 광고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번역이라는 어두컴컴한 동굴을 빠져나와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소개보다는 "번역"이라는 일을 시작하게된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써 보고자 합니다.

2010년...

때는 바야흐로 2010년. 팀을 이끌던 선배가 "질질 끌던" 번역 작업을 이제 마무리해야 한다며 리뷰를 부탁했습니다. 그 책은 켄 슈와버가 쓴 "엔터프라이즈 스크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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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 리뷰라는 것이 원서는 보지 않은 채, 번역된 초고를 읽으면서 어색한 문장이나 단어들, 오탈자를 제안하는 일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번역본 초고가 원서 없이는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존재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결국 리뷰를 하면서도 원서를 뒤적이며 꽤나 열심히 제안을 많이 해 드렸습니다. 그때 저의 성실함을 눈여겨 보신 선배가....

2011년...

직접 번역을 해보지 않겠냐며 "어마무시"한 책을 제안했습니다. 책 이름을 밝힐 수는 없으나 단어 그대로 "어마어마"한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거절한 것이 두고두고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2011년...

그러다가 또 선배의 추천으로 인사이트 출판사로부터 마틴 파울러가 쓴 "Domain Specific Language"라는 책 번역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 책 또한 제게는 "어마어마"한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회사에서 크게 할 일이 없었던게 가장 컸습니다. 그리고 파울러가 쓴 "Refactoring", "Patterns of Enterprise Application Architecture" 등 몇몇 책을 원서로 보면서 유익함을 떠나서(당연히 유익했지만) 책의 패턴이 상당히 익숙했고, "DSL" 책 역시 그 패턴과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6개월을 목표로 시작했던 일은...

2012년...

거의 2년이 되어서야 "DSL: 고객과 함께하는 도메인 특화 언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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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책을 읽고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 한글로 풀어쓰고, 다시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는 일은, 특히 일정에 쫓기며(회사에서, 그리고 번역으로) 해야 하는 일은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깊게 생각하고 한문장씩 한문장씩 정성스럽게 번역하기 보다는, 일단 초벌 번역을 해두고 나중에 와서 고치려는 전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치 개발처럼요. 그리고 다시 초벌 번역의 맨 앞부분으로 돌아왔을 때는 절망했습니다. 한 문장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마치 개발처럼요.

그래서 초벌 번역한 것들을 모두 버리고, 다시 한문장씩 곱씹으면서 정성을 들여 번역을 했습니다. 더디게 느껴졌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나은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마치 개발처럼요. 2년 가까운 시간을 들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번역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16년...

개인 블로그에 시간 날때마다 써 둔 글이 꽤나 쌓이게 되었습니다. 몇몇 주제를 묶어보면 100장정도 되는 글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엘라스틱서치"였습니다. 이 정도면 설치과정과 예제코드를 곁들이고, 현장 경험을 덧붙여서 책을 쓰면 꽤 유용한 글이 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실용주의 엘라스틱서치"라는 이름으로 인사이트 출판사에 역으로 제안했습니다(사실 그 전에도 "실용주의 하둡"이라는 책을 쓰다가 그만 둔 경험이 있습니다). 동료 한명과 예제 코드를 짜고 목차를 잡으면서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끝을 맽지 못했습니다. 둘 모두 육아 때문에 큰 시간을 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다시는 책을 직접 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17년...

또 다시 책 번역 의뢰가 들어왔고 한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습니다. 일단 다시는 번역이라는 동굴에 갇히기 싫었고, 받은 책이 너무 대단한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행여 부족한 실력으로(기술적으로나, 번역적으로나) 좋은 책을 잘못 번역하여, 이 훌륭한 내용을 허투로 전달하게 될까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호기심에 원서를 읽어보았습니다. 상당히 재밌었습니다. 조금 딱딱한 내용도 있었지만, 마치 소설마냥 이야기가 상당히 빨리 전개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6개월을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목표"라는 것이 "달성하지 못할 것을 염두에 두고 사전에 계획 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2019년...

그렇게 2년 가까이 걸려 로버트 마틴의 "클린 아키텍처: 소프트웨어 구조와 설계의 원칙"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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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회고는 역자 서문으로 남깁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면 한 번쯤은 SA(소프트웨어 아키텍트)가 되리라고 꿈꿔 봤을 것이다. 전체 시스템을 주무르고, 모든 업무를 꿰뚫어 보며, 쏟아지는 문제에 딱 맞는 기술을 도입하는 등 마치 전지전능한 신과 같이 동료들이 우러러보는 그런 존재 말이다. 하지만 SA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SA가 될 수 있는지는 늘 막연해 보인다. 또한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는 뜬구름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무언가처럼 느껴진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소프트웨어 시스템이란 무엇인지를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통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잘 설계한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만들때 왜 중요할까? 중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잘 만들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러한 고민에 대한 엉클 밥의 답변이며, 자서전적인 이야기다. 저자의 말을 따르자면, 지난 반세기 동안 하드웨어는 더 작아지고 빨라졌지만,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것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렇기에 좋은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만드는 원칙은 보편적이며 시간이 지나더라도 변함이없다.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원칙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처음 이 책의 번역 의뢰를 받았을 때, 그래서 원문을 읽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저자의 오랜 현장 경험과 지혜를, 그에 비하면 초년생에 불과한 내가 올바른 맥락과 용어로 풀어쓸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다. 결국 6개월을 계획하고 시작한 일이 2년이 넘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추천사의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즐거운 여정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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