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발걸음 원칙과 아기 발걸음으로 OKR 적용하기

지난 글에 부연 설명없이 아기발걸음을 언급했다. 나는 꽤 오랜 기간 아기발걸음 원칙을 따르고 있어 자연스레 얻은 혜택이 많다.  그래서, 아기발걸음 원칙에 대해 아는 바를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OKR 적용과 아기발걸음 원칙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설명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겠다.

아기 발걸음 원칙

많은 경우 나는 습관적으로 아기발걸음 원칙을 따른다. 특히 처음하는 일에는 예외없이 적용한다. 처음 시작하는 일은 대체로 요령이 없어 단번에 처리하려고 들면 무리만 하고 헛심을 쓰기 쉽다. 마치 어깨에 힘이 들어가 헛스윙을 하는 야구선수의 동작에 비유할 수 있다. 더구나 실수를 피하려고 잘하려고 계획 하다보면 머뭇거리거나 미루기도 한다. 마치 선생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문제를 풀 엄두를 못 내는 모범생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간은 유한한 자원이다. 아니 희귀한 자원이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가능한 빨리 뭐라도 시도하는 삶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필자가 XP 책에서 아기 발걸음을 공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얻었다. 그리고, 내 아이가 나만 보면 붙잡고 어설픈 걸음을 계속 이어가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한 행운덕에 나는 아기 발걸음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감각할 수 있었다.

지치지 않는 아기 발걸음

지치지 않는 아기 발걸음

아기가 어설픈 걸음으로 몇 걸음 걷다 넘어지고 또 걷는 모습은 놀라운 영감을 주었다. 작은 행동으로 나누어 재빠르게 반복하다 보면 우리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현저하게 완화된다.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고, 향상되는 모습에 저절로 자신감도 늘어난다. 그래서 결국은 머뭇거리는 행동이나 헛심을 쓰는 관성을 벗어나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 또한, 감정은 행복과 연관이 깊다. 같은 일을 시도하는데 상대적으로 더 나은 감정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하나 얻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

마지막으로 XP 책에서 설명하는 아기 발걸음 원칙에 대해 인용하는 것으로 아기 발걸음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한다.

큰 발걸음으로 큰 변화를 만들고 싶은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다. 가야 할 길은 먼데 주어진 시간은 짧지 않은가. 중요한 변화를 한번에 몰아서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다. 변화 요구의 대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다. 변화는 안정을 뒤흔든다. 사람들이 변할 수 있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한다. '올바른 방향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일 중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은 무엇입니까?' 아기 발걸음으로 걸어야 한다는 말이 정체 상태나 굼뜬 변화 속도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조건만 제대로 갖추어진다면, 사람들과 팀들은 많은 작은 단계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밟아나가서 마치 도약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기 발걸음은, 단계를 잘게 쪼갤 때 생기는 부하overhead가, 큰 변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때 드는 낭비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기 발걸음으로 OKR 적용하기

최근에 가까운 지인이 내가 OKR 적용하는 모습을 평하는 말씀을 주셨다. 과거 조직 생활 과정에서 KPI 설정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던 분이다. 그렇게 반감을 품은 상태로 내가 한다는 OKR은 무엇이 다른지 유심히 관찰하신 결과라 의미있는 피드백이었다. 그런데 놀라웠다. 한번도 내가 어떤 목적으로 OKR을 적용해왔는지 그분에게 설명한 바 없는데, 이를 관찰한 분이 효과를 확인해주었다. 그것은 내가 의도하고 노력해온 목표와 정확하게 일치하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OKR을 흉내내면서 의도한 목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조직의 정렬이고 두 번째는 목표설정 자체에 대한 개선이다. 일단, 이렇게 쓰고 보니 왜 OKR 책이 왜 사례 위주로 쓰일 수밖에 없는지 추측하게 된다. 여튼 이 글에서는 OKR 도입의 목표라고 선언한, 조직의 정렬 같은 문제를 푸는데 어떻게 아기 발걸음 원칙을 활용했는지 설명을 시작하겠다. 이번 글에서 어디까지 쓸 수 있고, 다음 글을 몇 번 더 써야 두 번째 목표까지 달성할지 모르지만 일단 시작한다.

내가 먼저 독립적으로 시작하자

이전 글 링크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아래와 같은 피드백이 달렸다. :)

지난 글에 달린 페친의 댓글

지난 글에 달린 페친의 댓글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 역시 XP를 배우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독립적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가장 먼저 했을 법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XP 책을 뒤져 내가 배운 내용을 인용하려고 했는데, 정확하게 어느 내용인지 못찾겠다. 필자가 기억하는 그 내용의 기원이 XP 책일 뿐 경험이나 다른 출처를 통해서도 익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여하튼 가장 비슷한 내용을 인용해본다.

여러분의 제안을 사람들이 수용하기 원한다면, 그것이 야기하는 문제의 수보다 그것이 해결해 주는 문제의 수가 더 많아야 한다. XP의 상호 이익 원칙은 내게 지금 이익이 되고, 나중에도 이익이 되고, 내 고객에게도 이익이 되는 실천방법들을 찾는 것이다. 윈윈윈winwinwin 실천방법들은 당장의 고통도 줄여주기 때문에 그것을 채택하도록 설득하기가 더 쉽다.

관점에 따라 어떤 분들은 인용문을 보고 내가 말하려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인용한 글만으로 페친의 질문에 대한 답이 안 풀렸다고 느끼는 분도 있을 듯 하다.

제 생각에 상호이익의 원칙을 따른다면, 동료를 설득하기에 앞서 당장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일인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아기 발걸음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확신이 들기 전부터 동료를 설득하려는 무리수를 두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좋은 책을 하나 읽었다고 그 책에서 말하는 OKR 이란 솔루션을 아무 경험도 없이 같이 해보자고 하는 것은 처음 보는 회사 주식을 같이 사자는 말과 같은 제안일 수도 있다. 일단, 내가 사서 스스로 이익이나 손해를 본 후에 설득을 시도해도 늦지 않다. 반대로 하면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삶에 무리하게(혹은 꼰대로) 개입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목표와 나 단둘이 앉기로 아기 발걸음 시작하기

목표와 나 단 둘이 앉아보자라는 결심은 두 가지를 마음에 담은 것이다. 하나는 나 스스로 사용하기 이전에 동료들을 설득하지 않는 것이다. 앞서 말한 상호이익 원칙에 입각해서 일을 시작하자는 선언이다. 두번째는 과거에 하던 일이나 앞으로 해야 할 일에 기초하지 않고, 내 마음속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즉, 일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할 것이 많으면 빠르게 갈 수 없다는 경험에서 기초한 것이다.

내가 발걸음을 뗄 지향점을 설정하는데 있어서는 그냥 아는 것이 좋지, 뭔가를 참조하거나 누군가에게 묻어야 하면 빠르게 배울 수 없다. 그러한 두 가지 기준에 따라 내가 OKR을 적용하여 얻으려는 바를 하나의 문장으로 바꿔보니 아래와 같았다.

구성원들이 각자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회사가 지향하는 바를 함께 만들어가도록 스스로 조정하고 사업 성과에 대한 인식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일

그런데, 구성원이 다수일 때 단번에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나? 그리고, 회사가 지향하는 바는 하나뿐일까? 설사 하나로 규정하더라도 모두가 똑같이 인식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이 지향점이긴 하지만, 그러한 지향점 혹은 비전을 현실에서 실현하려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꾸고 각각이 감각하고 함께 행동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어떻게 내가 아닌 동료들의 감각과 행동을 유발할 수 있을까?

혼자 만든 OKR을 피드백 받을 수 있는 형태로 바꾸기

일단, 피드백이 가능한 형태로 바꿔가는 여정이 필요하다.  지난 글에서 설명한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바꿔나간 구체적인 기록이다. 부제를 순서대로 훑어 보는 것으로 흐름을 살필 수 있다. 혼자 만든 OKR을 기준으로 동료들과 1:1 대화를 나눈다. 동료가 인식하는 OKR과의 차이를 알 수 있고, 더불어 동료들의 인식에 대한 피드백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내용을 보완한 후에 두레이에 등록하여 상시에 피드백 받을 수 있는 형태를 만든다. 디지털화로 볼 수도 있고, 비대면 업무 상황에 대한 고려로 해석할 수도 있다.

회사 차원의 OKR과 개인의 OKR을 분리한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의 인지가 분명해지는 피드백을 얻을 수 있고, 두레이를 살피는 동료가 있다면 그들의 인식 변화라는 피드백 기회가 있다. 더불어 그가 댓글을 준다면 또 다른 피드백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매달 1회 전원이 한 자리에 모여 회고 모임을 했다. 다자가 동시에 대면 참여하는 회고 모임의 피드백은 더 역동적이고 다양하다. 이렇게 나는 개인과 회사차원의 OKR을 서너 차례 재구성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씩 동료들과 내 인식을 공유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를 4번 했다. 4개월이 흘렀고, 나는 다음 단계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행복한 고민(혹은 또 다른 새로운 관문)에 빠진 상황에 도달했다.

맺음말

나는 아기 발걸음 원칙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리고, 몸에 베인 습관대로 OKR도 써먹어봤다. 그랬더니 4달만에 나와 나와 직접 소통이 가능한 동료들사이에서 적어도 나는 편하게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이를 더 확장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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